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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M의 획

K 

RM은 현재 K팝씬(Scene)에서 가장 흥미롭고, 영향력 있는 사람이다. 흥미로움과 영향력을 동시에 갖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는 이 씬의 지형을 만든 정복자이자, 돌출되어 판을 흔드는 도전자이기도 하다. 지난 9월 6일 ‘프리즈 서울(Frieze Seoul)’ 위크의 첫날, 리움미술관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개막 행사에 주요 인사로 참여한 RM의 모습은, 그를 지켜봐 온 이들을 기대와 긴장으로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수행자처럼 빡빡 깎은 머리에 엄밀한 미학으로 직조된 보테가 베네타의 컬렉션을 걸친 그는 실크 같은 럭셔리함과 픽업트럭의 배기음처럼 러프한 고유의 매력을 빛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스파크를 일으킨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K팝은 근본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시티팝의 명랑하고 허무한 고조감과 열광적 라틴 리듬, 프롬퀸과 레이디 마말레이드, 욜로(YOLO)와 카르마(Karma)가 한 음반에 담긴다. 그리고 이 정처 없음을 동력으로 케이팝은 달려 나간다. 혹독하게 흡수하고, 엉기고, 노리며. RM은 틱톡처럼 짧고 요란해 보이는 K팝의 유행에서 문화를 발굴한다. 그는 샤를 보들레르가 <현대 생활의 화가>에서 현대성을 정의하며 설명한 “유행이 포함할 수 있는 시적인 것을 꺼내는 일, 일시적인 것으로부터 영원한 것을 끌어내는 일”을 한다. 한반도의 격동의 역사와 치열한 K팝 산업의 현재를 연결하여, ‘K’가 꼬리표가 아닌 “(한국문화의 위대함을 알리려 노력한) 선조들이 싸워 일궈낸 프리미엄 마크”라고 정의한다. 한국문화에 대한 RM의 긍지는 시대와 공명하며,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가?’라는 새삼스러운 화두를 던진다. ‘K’의 흥행으로 새로이 점화된 이 논의의 지평은 RM이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RM은 ‘높은 문화의 힘’을 만든다.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려달라며 국외 한국문화유산 보존과 교류 사업을 하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지속적으로 기부하고, 한국전쟁 전사자의 유해 발굴 보훈사업을 하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홍보대사로도 활동한다. RM은 자신의 영향력으로 역사의 뿌리에 비료를 한 삽 더하고, 한국문화를 보다 울창하게 가꾸는 데 손을 보탠다. 최근의 음악적 행보도 일맥상통한다. 그는 개인 활동 위주의 방탄소년단 ‘챕터 2’ 플랜이 시작된 이래, 황소윤·폴 블랑코·바밍타이거 등 서울의 힙(Hip)을 대표하는 젊은 아티스트들과 정열적으로 협업하며 아이돌 음악으로 좁게 해석되고 있는 K팝의 경계를 허물고, 땅을 넓히고 있다. 
 

<강서경: 버들 북 꾀꼬리> 전시 개막 행사에서 RM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그의 현재를 상징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국문화계의 현대적 정수를 보여주는 프리즈 서울 위크의 첫날, 수많은 국보를 소장한 권위 높은 미술관의 안목과 능력을 전시하는 자리에서 화제의 정점에 섰다는 것. 명성과 기백, 동시대성과 궤적을 가진 이 젊은 음악가의 등장은 좌중을 술렁이고, 출렁이게 했다. 
 

새로운 문화는 그 시대 가장 담대한 예술가의 획으로 시작된다. RM은 뜨겁고 힘찬 자신만의 획으로 동시대 문화의 판도를 선도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나의 소원>에서 말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꿈꾸며. 


 

Untitled 

2023년 8월 6일. RM이 무대에 올랐다. 과시를 절제한 미니멀리즘한 복색에, 가로등 같은 스포트라이트 아래 서 있는 그는 자유롭고, 거대해 보였다. Agust D 월드투어 대망의 파이널 콘서트 게스트로 1년여 만에 대형 무대에 선 RM은, 떨리는 손으로 “You don’t have to be(그러지 않아도 돼)”라고 숨소리처럼 허밍 하는 신곡을 발표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치열하고 공허한 일상에서 어느 날 문득 올려다본 하늘의 현기증 같은 노스탤지어가 물들어 있었다. 
 

입대 전 마지막 공연의 피날레로 RM이 선택한 이 노래에는 제목이 없다. 아니, 제목조차 없다. 잠자리의 날갯짓처럼 투명하고 환한 이 노래는, 그러나 그의 음악적 연대기를 집약적으로 담아낸다. 정규 솔로 1집 앨범 [INDIGO](2022)의 타이틀곡 <들꽃놀이>의 “이 욕심을 제발 거둬가소서 어떤 일이 있어도 오 나를 나로 하게 하소서”라는 처절한 기도, 수록곡 <Still Life>에서 자신의 삶을 캔버스 속 박제된 정물과 비교했던 비릿한 실의로부터 한 발짝 걸어 나와 수많은 ‘타이틀’에 속박된 스스로에게 구원의 손을 내민다. 표제작인 <Yun>에서 인용한, 윤형근 화백이 인간의 목적이라 정의한 ‘천진무구한 세계’로 함께 가자는 듯. RM의 획은 그렇게 뻗어나간다. 모든 강렬한 것이 그러하듯 깊은 자국과 떨림을 남기며. 

 

 

<사진 제공 - 롤링스톤, BIGHIT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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