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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에서 시작해야만 한다

우리 역사 속에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때는 항상 혁신적인 사건과 인물들이 있었다. 역사가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20세기의 시작으로 여기는 것처럼 지금의 코로나 펜데믹을 21세기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멀게만 느껴졌던, 생활의 디지털화를 2년여 만에 이루어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서양음악사에도 혁신을 주도하여 새로운 길을 만든 작곡가들이 있다. 그 중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Igor Stravinsky, 1882~1971)는 그들 가운데 가장 혁신적인 작곡가라 말할 수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카멜레온 같은 음악가’라는 평가처럼 그의 삶과 음악은 변화무쌍하다. 1882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스트라빈스키는 1934년에 프랑스 국적, 1945년에 미국 국적을 얻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활약한 20세기 최고의 작곡가로 평가받는다. 국적이 여러 번 바뀐 것처럼 그의 작곡 스타일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통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계>의 작곡가인 비발디에 대해 “똑같은 협주곡을 100곡이나 쓴 사람”이라고 평가한 스트라빈스키의 독설은 그의 예술적 정체성을 대변해 준다. 특히 너무나 혁신적인 음악으로 인해 관객들의 폭동까지 야기하여 경찰까지 출동해야 했던, 1913년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의 <봄의 제전> 초연 무대는 클래식 음악계 최대의 스캔들이자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음악적 혁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오늘 소개하는 <불새 모음곡 (L'Oiseau de feu)>은 스트라빈스키의 초기작으로 무명이었던 스트라빈스키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은 출세작이자 낭만주의, 원시주의를 대표하는 그의 3대 발레음악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러시아의 전설적인 안무가 세르게이 디아길레프는 작가 아파나시에프의 전래동화집 <불새와 사악한 마술사 카스체이>를 소재로 <불새>라는 제목의 발레를 기획하는데 28세의 스트라빈스키에게 발레 음악을 의뢰하게 된다. 스트라빈스키는 <불새>의 소재가 전래동화인 만큼 음악에 러시아 민요 선율을 많이 차용하였고, 그의 스승이었던 림스키 코르사코프에게 영향받은 관현악법으로 다채로운 색채감의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복잡하고 현란한 현대적인 리듬은 스트라빈스키로 인해 새로운 시대의 음악이 시작되었음을 직감케 한다. 1910년 파리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불새> 초연에 참석한 프랑스의 작곡가 드뷔시는 <불새>에 대한 평을 부탁한 스트라빈스키에게 “어디선가에서 시작해야만 한다”라고 대답하였는데 이는 스트라빈스키로 인해 ‘음악의 새로운 길’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초연의 대성공에 고무된 스트라빈스키는 1911년 전체 발레곡 중 5곡을 선택해 오케스트라를 위한 연주용 작품으로 편곡하였고 이후 1919년과 1945년 두 차례 더 연주용 모음곡을 편곡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는 1910년 발레 버전과 1911, 1919, 1945년 연주용 버전, 총 4가지가 존재한다. 세 가지 연주용 버전은 각각 악기 편성과 구성이 조금씩 다른데 현재는 1919년 버전이 가장 널리 연주되고 있으며 각 곡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도입부 – 불새의 춤 – 불새의 변주 – 공주들의 론도(호로보드) – 마왕 카스체이의 지옥의 춤 – 자장가 – 피날레]

네 차례에 걸친 스트라빈스키의 잦은 편곡에 대해 혹자는 돈과 경제에 눈이 밝은 스트라빈스키가 서로 다른 버전에 따른 저작권을 챙기기 위해 행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마왕 카스체이의 지옥의 춤>에서 들려주는 강렬한 오케스트라 짧은 총주는 훗날 전자악기인 신시사이저의 <Orchestra Hit> 사운드로 샘플링 되어 지금까지 팝 음악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마이클 잭슨부터 브루노 마스까지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즐겨 사용하였고, 가요에서 사용된 대표적인 예로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하여가> 등이 있다.

<사진 출처 - 스트라빈스키, 스트라빈스키 불새 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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