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력질주>는 오랫동안 달려온 자와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한 자의 시간이 교차하며 드러나는 삶의 단면을 포착하고 있다. 서로의 시간이 교차하는 구조 속에서 전력 질주는 스포츠를 넘어 열정적인 삶의 은유가 된다. 롤링스톤에서 기획한 이번 인터뷰는 이승훈 감독을 비롯한 배우들이 전력 질주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청춘의 리듬과 호흡에 대해 담아내고자 하였다.
[RSK] 안녕하세요. 영화 <전력질주> 감독 및 배우님들! 롤링스톤 코리아입니다. 바쁘신 와중에 저희 매거진 서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매거진의 독자들을 대신해 영화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기꺼운 마음으로 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SK] 이승훈 감독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최근 영화계에 자극적인 소재가 많은데, <전력질주>는 오히려 담백한 이야기와 구조적 완성도로 승부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을 기획하신 계기와 꼭 이 작품을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승훈: 우연한 기회에 100미터 달리기 경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노장 스프린터가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지만,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죠. 그래서 사정을 알아보니, 육상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려면 기준 기록인 10초 05를 기록해야 하는데, 노장의 스프린터는 수년째 기준 기록을 달성하지 못하고 있었고, 또 그의 최고기록이 10초 07인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0.02초. 걸음수로는 정말 딱 한 걸음인데 그걸 수년째 줄이지 못하고 있는 노장의 스프린터한테 저는 제 모습을 좀 봤습니다. 저도 영화감독이란 목표를 위해서 오랜 시간 동안 노력했지만, 넘어지고 주저앉는 과정 중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노장의 스프린터(김국영 선수)나 저처럼 바라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주저앉아있는 사람들을 다시 뛰게 만들 이야기를 만들어 보자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꿈을 향한 나의 전력 질주가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얼마나 반짝이게 하는 것인지 그 사실을 관객들에게 선물하는 이야기를 하자 마음먹었죠.
말씀대로 전력 질주처럼 담백한 이야기가 요즘 같은 시기에 경쟁력이 있을까 의문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응원하고, 지금까지 정말 잘 달려왔다 격려하는 그런 이야기도 누군가에겐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RSK] 영화 <전력질주>는 상승곡선을 그리는 강승열과 하강곡선을 그리는 강구영을 대비적으로 배치하셨는데, 이러한 교차 구조를 통해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인가요?
이승훈: 말씀하신 것처럼 구영과 승열은 많은 점에서 대비되는 인물들입니다. 구영은 오랜 시간 대한민국 단거리의 일인자로 살아왔지만, 계속되는 실패와 기록 단축에 대한 중압감으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기만 하죠. 반면 승열은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한 풋내기이지만, 트랙의 탄력을 신기해하고 달릴 때 느껴지는 바람을 사랑하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달릴 때 즐거워하느냐 아니냐인데요.
중요한 것은 구영도 분명 달릴 때 승열만큼이나 즐거워하고, 가슴이 쿵쾅거리던 사람이었다는 겁니다. 다만 그걸 까맣게 잊어버렸을 뿐이죠. 그런데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가슴 뛰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 사실을 자꾸 잊으며 살지 않나요?
전력 질주는 구영이 까맣게 잊고 있던, 가슴 떨림을 회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승열처럼 달릴 때 행복해하던 사람임을 깨닫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력 질주를 보시는 관객들도 구영과 같은 결말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RSK] 스포츠 성장물이나 청춘물이 지닐 수밖에 없는 성장과 극복이라는 클리셰를 극복하기 위해 감독님은 어떤 고민을 하셨는지요? 이것은 대비적 구조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뭐랄까, 인물들과 자연스럽게 거리두기가 이루어지는 느낌이랄까요?
이승훈: 피할 수 없으면 즐기란 말이 있듯, 청춘물의 클리셰는 극복한다기보다는 그걸 오히려 더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익숙함에서 오는 재미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시나리오 때부터 승열은 만화를 특히, 청춘만화를 좋아하고 만화 속 주인공처럼 살고 싶어 하는 캐릭터로 설정했습니다. 신영 씨와 처음 만났을 때도 “승열은 슬램덩크의 강백호와 H2의 히로, 그 사이에 살고 있는 녀석”이라고 이야기했었죠. 그런데 만화 속 캐릭터를 기반으로 연기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신영 씨가 승열을 아주 승열스럽게 잘 연기해 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런데 클리셰를 활용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막바지 불꽃을 태우고 있는 노장의 스프린터와 이제 막 불타기 시작한 풋내기 스프린터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드라마, 이것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스포츠물의 서사구조인데요. 이 부분만큼은 전형성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엔 함께 작업한 유성권 프로듀서님과 안희진 대표님의 도움이 정말 컸습니다. (감사하다는 말씀 꼭 기사에 담아주셨으면 합니다ㅎ) 말씀드린 전형성을 벗어나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은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RSK]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전력 질주는 입시, 우정, 사랑, 자기 극복 등의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감독님의 개인사에 있어서 달리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그것이 이 영화와 관련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승훈: 늘어난 나이와 체중 때문에 달리기를 그리 잘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꾸준히 하려고 노력 중이죠. 적절한 답변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목과 관련해서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원래는 ‘전력 질주’라는 제목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직접적인 제목 같았거든요. 그런데 한 스태프가 동료와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들은 이후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요즘 무슨 작품 하냐는 동료의 질문에 스태프가 “나 요즘 전력 질주하고 있어”라고 답을 했는데요. 스태프의 대답 속에는 지금 하고 있는 영화의 제목을 말하는 동시에 ‘모든 힘을 다해서 달리고 있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이후로 전력 질주라는 제목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처럼 전력 질주를 위해 전력 질주했죠.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했다면 결과 여부를 떠나서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한 걸음 나아갔다는 뜻이고, 그 한 걸음을 통해 또 한 걸음 나갈 수 있으니까요. 저는 그 한 걸음의 가치를 굳게 믿습니다. 그 믿음의 결과물이 전력 질주입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달리기는 그리고 전력 질주는 한 걸음 나아갔다. 그리고 그 순간 행복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번도 행복해지고 싶다. 그걸 위해서 또다시 전력 질주하겠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력 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RSK] 하석진 배우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영화 <전력질주>라는 시나리오를 받으셨을 때, 이 작품의 무엇에 매력을 느껴서 작품을 선택하셨는지요?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하석진: 집 근처 카페에서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는데, 단순히 청춘과 중년의 대비를 그린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세대와 노장이 각각의 이야기 안에서 부딪히고 서로 다른 고민을 드러내며 경쟁하는 이야기 정도의 작품으로 예상했습니다. 스타트라인 쪽에서 출발하려는 청춘들과 평생을 치열하게 달리고 결승선을 바라보는 구영의 이야기. 솔직히 말하면 마흔이 넘어 단거리 현역 선수 역할을 맡는다는 건 조금 오버 아닌가 싶었습니다. ‘내가 해야 할 건 코치 역할 아닐까?’라는 생각도 스치듯 들었고요.
읽을 때는 느꼈고, 찍을 때는 긴가민가했지만, 결과물로 나온 걸 큰 화면에서 봤을 때 역시 민지의 손을 잡고 뛰는 씬. 그 씬의 여운이 컸습니다. 그리고 승열이의 이야기가 구영이의 스타트라인 시점의 이야기라는 걸 알고 나서는 나름 울림이 길었던 것 같습니다.
카페에 시나리오 책을 들고 들어갈 때와 다 읽고 나올 때의 기분이 완전히 달라졌던 기억?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시작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에는 “아, 나 달리기 연습 꽤 열심히 해야겠는데? 이게 되려나 모르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SK] 영화를 준비하면서 달리기를 계속해야 하는 상황인데, 어떤 방식으로 달리기 연습을 하셨고 몸을 만드셨나요?
하석진: 사실 우리가 일상에서 전력으로 스프린트를 한다는 게 조기축구 정도를 하지 않는 이상 어느 시점부터는 전혀 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요, 가령 대중교통을 놓칠 위기라고 한다 해도 중고등학교 시절 체력장 때의 질주와 비교했을 때 전력 달리기의 80% 수준이려나요?
저는 단거리 달리기를 제대로 배워본 적도 없고, 학창 시절에도 소위 ‘빠르다’라는 평가를 받은 적이 없는 타입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걱정이 많았어요. 다행히 촬영을 두세 달 정도 앞두고 제작진을 통해 하남의 한 육상 훈련 아카데미를 소개받았고, 매주 2~3회 오전 시간대에 집중 훈련을 받았어요.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최대한 단거리 달리기의 기본기를 익히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무동력 트레드밀을 전력으로 달리는 게 무서웠는데, 나중엔 기기상 순간 속도 32-3km까지 올리는 쾌거(?)도 이뤘던 기억이 납니다. 연습과 촬영 중간중간 신스프린트 같은 부상 증세가 생기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노익장’을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버텼습니다.
내가 좀 더 달리기에 소질이 있는 인간이었다면! 달리기 레슨을 좀 더 일찍 혹은 더 긴 시간 훈련 할 수 있었더라면 영화상에서도 좀 더 나은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RSK] 이 영화에서 강구영이라는 캐릭터가 한국 최고의 달리기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정점에서 내려오고 있는 캐릭터로 보여요. 이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점들을 중점적으로 고민하셨는지요? 그리고 선수로서 겪게 되는 에이징 커브로 인해 발생하는 현실적인 제약과 압박들이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데,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관객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하석진: 큰 그림에서는 구영은 육상 트랙 위에서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시간이라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상대에게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어요. 저 역시 배우로서 20대와 30대를 실제 삶과, 또 촬영 현장에서 치열하게 보내며 어느새 40대에 접어들었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구영을 연기할 때 단순히 인물의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삶과 겹쳐 보이는 부분이 많았다.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또한 실제 피지컬 훈련을 겸해서 이 캐릭터를 담아내다 보니, 노장 선수의 노화한 육체(?)를 실제로 메소드 연기 체험이 되는 부분도 작품에 임하는 데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아, 이거 예전만큼 안되네? 나 이거 전에는 가능했던 것 같은데?” 따위의 생각들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실제로 느껴지는 것들이 구영이라는 인물을 묘사하는 데에 좀 현실적으로 반영이 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관객분들께 감히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가, 그리고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은 무엇이었는가, 그 질문에 다시 한번 답해보게 만드는 이야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RSK] 하석진 배우님에게 이번 작품을 통해 트랙과 달리기가 남다른 의미가 되었을 것 같은데요. 그것이 과거와 달리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하석진: 구영은 자신의 몸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며 살아온 사람이고, 나는 그의 이야기를 빌려 잠시 그 세계를 경험한 사람이지만, 몇 개월간 그를 표현하기 위해 몸을 만들고 달리기를 반복하다 보니, 그 과정이 내 몸을 그리고 어느샌가 마음도 조금씩 변화시켰다. 그 경험을 통해서 단순히 연기를 넘어서, 나 자신에게 배우고 또 스스로를 가르치게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RSK] 이신영 배우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영화에서 강승열을 연기하시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요. 순진무구함과 열정을 위해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는 태도라고 할까? 무엇인가에 홀릭해 가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어요. 앞의 강구영의 삶과는 대비된다고 생각하는데, 강승열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들은 무엇인가요?
이신영: 승열이라는 인물을 구축할 때 오히려 더 접근을 최대한 단순하고 심플하게 접근하려 했습니다. 청춘을 그리는 작품이고 청춘 그 자체인 승열의 순수함을 가진 친구를 만들기 위해선 본능적이고 직감적인 모습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저의 그때 그 시절을 다시 회상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을 하고 캐릭터에 만들려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가면서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기에 행동을 실천해 옮기는 것보단 생각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 후회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맡은 승열이라는 인물은 생각보다는 행동, 하지만 그 속엔 이유가 분명한 친구라 생각하며 디테일을 살리려 했던 거 같습니다.
[RSK] 이 영화는 어쩌면 0.1초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속도’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자세히 보면 누구나 자신만의 트랙 위에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방향’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이신영 배우님에게 영화 <전력질주>는 앞으로의 자기 연기 인생에서 어떤 의미와 방향이 되어줄 것 같은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이신영: 이번 작품을 준비하고 마무리하기까지 그 후로 바쁘게 지낸 지난 저희 생활과 삶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중 요즘 삶에 실행하고자 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승열의 순수함에 열정과 패기를 다시금 생각하면서 일, 생활 구분 없이 저희 삶 속에서 작은 것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 내가 행복해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구체적인 목표를 잡고 정확하게 나아가고자 하는 중인 거 같습니다.
[RSK] 영화에서 보면 실제 육상 훈련 과정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훈련하면서 어떤 어려움 같은 것은 없으셨는지요? 있다면 어떻게 연습하면서 극복하셨는지요?
이신영: 초등학생 때 육상 선수로 활동했던 적이 있어 처음 작품을 접했을 땐 육상이란 스포츠 자체엔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달리는 장면이나 경기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선수로서의 디테일을 살리는 작업을 통해서 그 속에서 캐릭터를 잘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크랭크인 전부터 달리기는 과정을 몸에 익히기 위한 작업을 하였고, 그 과정에서 지치고 어려움도 많고 힘도 들었지만, 무척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힘들고 지치기보다는, 승열이라는 캐릭터는 내가 준비한 만큼 만들어지기에, 오직 그 생각으로 좀 더 저를 채찍질하며 캐릭터에 동화되려고 했습니다.
[RSK] 이번 작품의 강승열 캐릭터도 좋았지만, 앞으로 배우로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 같은데요, 앞으로 어떤 캐릭터를 연기해 보고 싶으신지요? 혹은 배우로서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다면 어떤 분일까요?
이신영: 저는 어떤 캐릭터를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에서 나에게 맞게, 그리고 맞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궁금해하고 만들어 가는 게 항상 기대되고 설레는 작업인 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작품 속 캐릭터 모두 처음 만나면서 두려울 때도, 설레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의 또 다른 면을 한 인물로 투영해 극대화 증폭시켜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RSK] 다현 배우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처음 영화 <전력질주>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이고, 어떤 마음으로 관객들이 관람했으면 하는지 질문드리고 싶어요.
다현: 대본 처음 읽었을 때 쭉쭉 한 번에 읽혔던 것 같아요. 본인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노력하는 순수한 열정을 응원하게 되었고, 지은이가 저랑 닮은 부분이 많다고 느껴져서 지은이라는 캐릭터에 마음이 많이 갔었어요.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을 테고 힘든 순간도 있을 테지만 저희 <전력질주> 영화를 보시면서 “맞아. 나 이 일 좋아서 시작했지!”, 이 일을 함으로써 가슴이 뛰고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던, 그런 기억들을 떠올리며 여러분들에게 응원과 힘이 되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SK] 다현 배우님께서 연기하신 지은 캐릭터는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배우님은 ‘두부’라는 별명도 있으신데, 그 순수하고 말랑한 귀여운 느낌이 영화에서는 지워진 것 같아요. 자기주장도 강하고, 겉으로 차가워 보이면서도, 주변을 은근히 챙기는 캐릭터라서 매력적이라고 느꼈습니다. 이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 다현 배우님께서 고민하신 부분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다현: 지은이는 츤데레라고 생각해요. 겉은 시크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지은이도 좌절을 겪었던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그 괴로운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승열이를 토닥여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은이는 달리기를 좋아서 시작했지만 무릎 부상과 수술로 인해 예전의 기량을 회복 못 하고 있어서 현재 흥미를 잃고 있는 상태지만 승열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다시 한번 심장이 뛰게 되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입꼬리가 씰룩거리게 되는 친구인데요. 촬영 들어가기 전에도 감독님과 지은이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지은이라는 캐릭터를 함께 만들어갔기 때문에 감독님께도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RSK] 예전 인터뷰를 보니 발목 부상의 경험을 언급하신 것으로 보여요. 이 영화에서 지은도 무릎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인물로 등장하는데요. 실제 발목 부상의 경험이 지은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에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요?
다현: 발목 부상으로 트와이스 활동을 잠시 쉬었던 적이 있는데요, 그때 다른 멤버들은 활동을 한창 하고 있는데 저는 혼자 집에서 회복하는 동안 정말 답답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아서 정말 속상했고 지은이도 마찬가지로 예상치 못한 부상으로 무릎 수술을 하게 되면서 마음만은 결승선에 이미 벌써 가 있지만 다리가 그만큼 따라주지 못해서 지은이의 답답한 마음이 제가 겪었던 경험과 감정이 떠오르면서 지은이가 마치 저처럼 느껴졌고 지은이에게 투영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RSK] 다현 배우님은 아이돌이시기도 하기에, 무대의 박자에 익숙하실 것 같은데, 이번 달리기 연습을 하면서 런닝 과정의 남다른 호흡법이나 어떤 리듬감이 있을 것 같아요.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지은이라는 스프린터로 변신하는 데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요?
다현: 달리기에 대해 자세하게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냥 달리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육상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점점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운동할 때 쓰이는 근육들은 또 다른 것 같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민첩하고 강하게 움직여야 했으며, 운동을 하면 할수록 운동선수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어요. 뛰기 전에 하는 훈련(드릴, 스킵 동작들 등등)들은 평소에 춤을 추다 보니까 리듬이나 동작은 빠르게 익힐 수 있었고, 나름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RSK] 이순원 배우님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이순원 배우님께서 연기한 준수라는 캐릭터는 뭔가 짠한 느낌이에요. 선한 의도의 거짓말(?)로 인해 강구영의 삶에 변화의 계기를 주는 캐릭터라고 생각됩니다. 이 캐릭터는 강구영에 대한 애정이 과한 캐릭터인데, 어쩌면 작품 전체에서 연기가 과장되거나 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을 어떻게 조율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순원: 우선 준수와 구영의 관계는 영화 ‘라디오 스타’에서 박중훈, 안성기 선배님이 연기하신 최곤, 박민수의 관계를 모티브로 하였다는 점을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준수는 과거에 육상 선수였지만 자신의 능력을 일찍이 깨닫고 구영이에게 자신의 인생을 건 인물입니다. 어찌 보면 내 인생을 다른 사람에게 던진 무모한 행동을 한 인물인 셈이죠.
하지만 이런 전사가 무색하게도 구영을 위해 했던 준수의 선한 거짓말과 행동들이 구영을‘약물복용선수’라는 오명을 씌우고 낙인을 찍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던 행동이 최악의 결과를 만들었는데, 뜻밖에 최악의 결과는 구영이라는 인물로 하여금 한계를 뛰어넘도록 만들게 됩니다. 반전의 반전이죠!
인간이라면 누구나 준수처럼 실수를 합니다. 더군다나 그 실수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알 수 없죠. 최악의 상황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것처럼. 그래서 준수를 연기할 때 매 순간 최선의 선택을 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면서, 과해질 수 있는 준수의 에너지를 다듬어 나갔습니다.
[RSK] 예전 언론 행사 인터뷰에서 모두가 뛰는데, 자신만 뛰지 않은 캐릭터라고 말씀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영화 <전력질주>의 준수처럼 뛰지 않고 누군가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해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뭔가 짠하고 공감이 가는 캐릭터였습니다. 배우님은 준수라는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고 이해되기를 바라는지요?
이순원: 준수는 우리 주위에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인물이자 강구영의 팬인 동시에 조력자입니다!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지만, 그 스포트라이트가 구영이에게 향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을 때 보람과 행복을 느끼죠.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본인이 선택했던 꿈이 좌절되는 순간을 마주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때 좌절된 것은 살아가는 동안 끊임없이 꾸는 꿈 중 하나일 뿐 우리의 인생이 아닙니다. 혹시 어디선가 좌절된 꿈으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준수라는 인물을 보고 힘을 내셨으면 합니다.
[RSK] 이 작품에서 이순원 배우님과 하석진 배우님의 캐미가 돋보였던 것 같습니다. 혹시 하석진 배우님과 작품을 하면서 겪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순원: 석진이 형(맞아요, 저보다 형(?)입니다.)과는 첫 만남부터 잘 맞았어요. 나이대가 비슷하다 보니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작품에 구영이하고 준수가 함께 얼음물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원래는 구영이 혼자 들어가는 신이었습니다. 제가 의리로 그 고통을 함께 한 것이랍니다. (웃음) 고통까지 함께한 동료애인데 애석하게도 제가 먼저, 버티지 못하고 뛰어나가는 걸로 장면이 마무리되었습니다.
[RSK] 이순원 배우님은 영화 <전력질주>를 관객들께서 어떤 마음으로 즐기고 공감해주기를 바라시는지요?
이순원: <전력질주>는 육상 선수들의 이야기지만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 다른 이유와 목표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처럼요.
예를 들어 준수에게 구영의 0.02초는 단순히 현실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지난 십수 년의 설움과 청춘이던 시절의 맑았던 꿈과 앞으로 굳건히 나아갈 것이라는 다짐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구영, 승열, 지은, 근재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도전이 응원받아야 하는 이유, 그건 단편적인 시선만으로 따라잡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전력질주>는 과정을 보고 그 시간을 응원합니다. 모든 관객분들의 크고 작은 도전들을 모두 응원하고 싶습니다. <전력질주>를 보시고 내일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과연! 구영이가 0.02초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인지도! 함께 지켜봐 주세요!
<사진 제공 - 레드아이스엔터테인먼트, 삼백상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