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밴드 WONK가 2년 만에 새 앨범 [Shades of]를 발표했다. 이번 작품은 그동안의 앨범 중 WONK가 가장 내밀하고 진솔한 마음을 꺼내 보인 결과물로, 한 편의 에세이와도 같다. 이들은 감정을 하나씩 톺아 나가면서, 인간의 영원한 화두인 ‘삶이란 무엇인지’를 탐구하여 음악과 함께 엮어냈다. 고요한 방에서 1번 트랙 <Fragments>부터 차근차근 듣고 싶은 앨범, [Shades of]의 작업기를 지금 만나보자.
1. [RSK] 안녕하세요! 드디어 WONK 여러분을 모시고 얘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정말 기뻐요. 그럼, 먼저 한국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롤링스톤 코리아! WONK입니다. 최근에 새 정규 앨범 [Shades of]를 발매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한국 리스너분들을 만나게 되어 대단히 기쁘네요.
2. [RSK] 이번 앨범은 총 12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어떤 지점을 중점으로 두고 순서를 구성하셨는지 궁금해요.
밴드의 리더인 아라타가 앨범 제작 초기부터 트랙 배치를 구상했어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트랙 리스트가 마치 인생의 1막처럼,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드라마틱한 전개로 이루어져 있다고 느껴졌어요.
3. [RSK] 4년 만에 발매한 정규인 만큼 의미가 남다를 거 같은데요. 그동안 멤버분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셨나요?
팬데믹을 극복하고, 밴드 결성 10주년을 앞둔 상황에서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어요. 무리하지 않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WONK를 대변하는 작품을 만들자는 결정을 내렸고 그 결과가 전작인 [artless]입니다.
이번 앨범은 [artless]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지만, [artless] 발매 후 저(보컬/켄토) 개인적으로 인생을 되돌아보고 이를 고민하는 시점이 있었어요.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삶에 관해 고찰했고, [Shades of]는 그런 가운데 나온 앨범이에요. 그래서 WONK의 앨범 중에서도 제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드러낸 작품일지도 모르겠어요.
4. [RSK] 이번 앨범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트랙을 골라볼까요?
모든 곡에 대해 깊은 애착이 있지만, 하나만 꼽자면 첫 번째 트랙인 <Fragments>예요. 어느 날 밴드와 아침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당시 제가 겪고 있던 고뇌를 털어놓은 순간을 담은 곡이에요.
5. [RSK] 이번 앨범에 참여한 아티스트 라인업이 화려해요. 빌랄(Bilal), 슬럼 빌리지(Slum Village)의 멤버 T3, 키퍼(Kiefer), 쿠보타 토시노부(Toshinobu Kubota)를 비롯한 일곱팀이 참여하셨죠. 이분들과 함께 작업하며 생긴 일화 중 몇 가지를 공유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비와이와의 작업이 떠오르네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데모를 보냈는데, 저희 음악을 마음에 들어 했어요. 작업이 성사될 줄 몰랐거든요.(웃음) 일본어나 영어와는 또 다른, 독특한 플로우의 비와이의 랩은 무척 근사했어요.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쿠보타 토시노부와의 작업은 저희에게 최고의 경험이었어요. 미팅부터 녹음, 그리고 믹싱에 이르기까지 음악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걸쳐 그의 열정과 보컬리스트로서 능력, 스타일의 깊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어요. 오랫동안 존경해 왔던 인물과 같은 스튜디오에서 함께 곡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소중한 경험이었죠.
빌랄(Bilal)과 슬럼 빌리지(Slum Village)는 저희한테는 히어로이고, 참여진 중 유일한 동갑내기로 친하게 지냈던 래퍼 Jinmenusagi와 함께 곡을 만들 수 있었던 일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6. [RSK] 4번 트랙 <Skyward>는 비와이가 피처링을 맡아서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는데요. 두 팀의 합이 좋은 게 느껴졌어요. 이번이 첫 작업 맞죠?
네, 맞아요. 비와이와의 첫 콜라보였고, 무엇보다 한국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한 것도 처음이었어요. 단순히 멋진 랩을 선사해 전달해 준 것뿐만 아니라 믹싱에 관한 집념까지 크리에이터로서의 열정에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7. [RSK] 앨범을 여는 첫 번째 트랙은 <Fragments>예요. 제목 때문인지, 산산조각 난 잔해와 파편들이 연상되더라고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무엇보다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깊게 고찰한 적이 있었습니다. 삶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조차 모르겠더라고요. 그때의 심경이 제목에도, 또 노래에도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8. [RSK] 타이틀곡 <Shades>에 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이 곡은 앨범 제목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데, 사람에게는 모두 장단점을 비롯해 다양한 면을 갖고 있고, 그 면면들은 빛의 방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밴드도 마찬가지라 생각해요. 팬들이 바라보는 WONK와, 우리가 생각하는 WONK는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까요. 어쩌면 모두가 못 보는 곳에 진짜 WONK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이를 가사와 사운드로 표현했습니다.
9. [RSK] WONK의 시작도 잠깐 짚어볼까요. 2013년도에 결성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나요?
아라타의 권유를 받기 전, 당시 대학생이었던 멤버들 모두 각자의 환경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저는 당시 다니던 대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사회인 뮤지션들과 재즈 밴드 보컬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아라타(드럼)를 다른 뮤지션을 통해 알게 되었고, 아라타를 포함한 학생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라이브를 몇 차례 함께 하기도 했습니다. 아라타와 이노우에(베이스)는 학교 선후배 관계였고, 동아리에서 음악을 함께 했던 사이였죠. 에자키(피아노)와 아라타는 또 다른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친해졌고요. 그러던 어느 날, 아라타가 지금의 멤버 각각에게 모두 연락해 본격적으로 WONK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사실, 고등학교 시절 이노우에와는 고등학생 때 교류가 있어 함께 밴드를 하기도 했는데, 대학에 입학하며 서로 연락이 닿지 못했거든요. 그러다 WONK를 결성하며 그 계기로 다시 재회할 수 있었죠.
10. [RSK] 팀명은 비밥의 창시자 Thelonious Monk(델로니어스 몽크)의 이름에서 가져오셨다고 들었어요. Monk의 첫 글자를 뒤집어 WONK가 되었다고요. WONK의 시작에는 재즈 장르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걸까요?
다양한 장르나 분야의 음악이 밴드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공통 분모로 재즈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에요. Monk의 독특하고 파격적인 스타일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고, 그 이름에서 유래한 WONK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마침, Wonk라는 단어에 ‘공부벌레’라는 의미가 있어, 저희의 배경이나 학력을 생각해 보면 (밴드명을 다음과 같이 지은 게)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것 같았어요.(웃음)
11. [RSK] WONK 하면 다양성을 빼놓을 수 없어요. 재즈, 소울, 힙합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크로스오버한 사운드를 사용하고 계시잖아요.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접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처음부터 음악 간의 융합을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지금 시대에 저희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자연스럽게 크로스오버가 벌어진 것 같아요. 과거 유명한 뮤지션들의 명반들도 그 당시에는 최첨단 음악으로 인식되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R&B나 힙합, 네오소울도 그 시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추구한 결과 탄생한 음악들이라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해 보면, WONK가 추구하는 음악은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거나 어떤 것을 답습하는 것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진정한 새로운 음악이고 싶다고 늘 생각해요.
12. [RSK] 또한 곡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듣고 싶어요. 합주하며 노래를 만드시는 편일까요?
이번에는 합주로 시작한 곡은 없었던 것 같아요. 보통은 각자 맡은 곡의 토대를 만들고, 서로가 디렉터가 되어 예를 들어 ‘이런 분위기를 만들고 싶으니 이런 피아노 연주를 부탁한다’, ‘이 곡에 어울리는 베이스를 연주해달라’와 같은 식으로 요청하며 만드는 방식이에요. 멜로디는 기본적으로 아라타가 만들지만 가끔은 제가 만들기도 하고, 가이드가 완성되면 그 이후 제가 가사를 쓰곤 합니다.
13. [RSK] 영감이 찾아오지 않을 때는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나요? 송캠프를 다녀오신 적도 있나요?
다른 프로듀서와 함께 곡을 만든 경험은 각자 있을 것 같은데, 대규모 송캠프를 경험해 본 적은 없네요. 저희의 활동 방향성은, 각자가 WONK 외의 활동에서 얻은 경험을 다시 환원하는 형태라 생각해요. 외부에서 쌓은 새로운 경험을 WONK에 녹여낸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매번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영감이 고갈되었다면 음악 외의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요. 새로운 예술을 접하거나 책을 읽기도 하고, 여행을 가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죠. 최근 몇 년 동안은 합숙 형태의 제작을 통해 평소와 다른 환경에서 음악을 만드는 것을 시도하고 있어요. 이번 앨범도 자연이 가득한 곳에서 완성되었고요.
14. [RSK] WONK의 음악에 영향을 준 아티스트나 앨범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엄청 많죠.(웃음) 이번 앨범 발매와 함께 특별히 오픈한 웹사이트를 통해, 시대별로 WONK에 영향을 준 음악과 뮤지션들을 정리해 보았으니 꼭 한번 체크해보시길 바라요. 특히 D'angelo나 Erykah Badu를 좋아합니다. 그들이 그루브를 만드는 방식을 늘 참고하곤 합니다.
https://shadesof.tokyo/#chronicle
15. [RSK] 현재는 독립 레이블 에피스트로프(EPISTROPH)를 설립해 활동 중이기도 하죠. 이 레이블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뭐예요?
에피스트로프(EPISTROPH)에서는 ‘잘 팔릴 수 있느냐’가 아닌, ‘좋은 음악이냐’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어요. Brainfeeder나 Stones Throw와 같은 레이블을 항상 동경해 왔어요. 한 음악가가 성공하면 주변에 위치한 신진 뮤지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해 함께 성장해 나가는 스타일이 무척 마음에 들어요. 그야말로 순수한 방식이잖아요. 가족 같은 느낌 또한 있고요.
16. [RSK] 킹누(King Gnu)와 협업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어요. 앨범 [Sympa]와 [CEREMONY]에서 함께 하셨는데요. 색깔이 뚜렷한 두 밴드의 작업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기본적으로 하는 일은 똑같아요. 사운드나 메시지가 다를 수는 있지만, 저희 모두가 음악을 만들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이를테면 연주나 노래의 감각,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관한 생각은 동일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예전부터 누구보다 음악에 관해 진지했죠. 자신들만의 창작을 흔들림 없이 고수하면서 전력을 다하는 열정에 항상 존경심을 느껴요. 동료로서 그들의 성공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던 라이브하우스에서 함께 공연하던 시절 또한 문득 떠오르네요.
17. [RSK]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음악 시장에서는 밴드 음악이 부흥하고 있어요. ‘밴드 붐’이 일고 있는데, 관심 있는 한국 밴드나 아티스트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혁오는 예전부터 좋아했고, LUCY도 좋아해요. CNBLUE는 일본에서 활동도 했기에 제가 알고 있고요. 검정치마의 <EVERYTHING> 분위기가 좋아 한동안 듣곤 했네요.
18. [RSK] 오는 12월 7일에는, 세계적인 재즈 페스티벌 중 하나인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의 일본판, ‘Montreux Jazz Festival Japan 2024’에 출연하신다고 들었어요. 이번 페스티벌에 찾아온 사람들이 눈여겨볼 만한 포인트는 무엇이 있을까요?
오랜만에 현악기와 관악기를 포함한, 대규모 밴드 셋의 공연이 이뤄질 것 같아요. 비트에 기반한 악기들이 중심이 되는 셋을 최근 선보였던 터라, 저희도 기대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신곡들이 라이브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할지 저희도 모르기에, 앨범을 들어 주신 팬분들에게도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갈 거라 생각해요. 무엇보다 같은 무대에서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을 볼 수 있다니. 정말 멋진 일이죠.(웃음)
Photographs by WO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