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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형된 인간, '비인간'과의 대결

최근 한국에서 유행한 넷플릭스 컨텐츠의 경향에 대해

최근 한국 넷플릭스의 인기 콘텐츠에서 엿보이는 하나의 경향이 있다. 바로 '비인간의 형상'이 어른거린다는 점이다. 괴물과 좀비부터 각종 크리처까지, 인간을 닮았되 기묘하게 변형되고 부패한 그것들은 지금 한국의 OTT 시장에서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비인간과 인간의 끈적하고도 열띤 대결의 순간에 관객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다.  

 

이런 경향의 큰 축을 이루는 것은 바로 ‘좀비물’이다. 한국은 지금 좀비물의 전성기를 맞았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다양한 좀비 콘텐츠가 지속 생성되고 있다. 지난해 3월에 개봉한 <킹덤2>는 국내 뿐 아니라 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열에 취약하고 빠른 스피드를 자랑하는 조선판 좀비를 구현해 냈다. <킹덤2>는 기근에 시달리는 민초의 이야기 등 좀비의 발생 배경에 보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부여한다는 특징이 있다.

 

 
 

 

또 지난 6월에 공개되어 인기순위에 오른 <#살아있다> 역시 좀비물이다. 이 작품은 좀비 자체의 특성보다는 그것을 상대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집중한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한 동의 아파트에 갇혀 가까스로 소통하며 마침내 탈출하는 순간까지를 다룬다. 

 

극장 개봉작까지 범위를 넓혀 보면, 2016년 개봉돼 이례적으로 외국에서 흥행몰이에 성공한 <부산행> 역시 좀비물이다. 열차라는 제한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소리에 예민하고 빠른 한국판 좀비를 선보이며 K-좀비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이 작품은 좀비 바이러스의 감염을 두고 주인공에게 윤리적·감정적 선택의 순간을 자주 부여한다. 바이러스에 걸렸을지 모를 인물을 안전한 열차 칸에 합류시킬 것인지, 좀비로 변해버린 친구를 보고 잠긴 열차칸의 문고리를 열 것인지 등을 고민하게 하는 장면들이 그렇다. 이후 연상호 감독은 2020년 영화 <반도>에서 다시 한 번 좀비물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부산행>에 존재하던 윤리적 선택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보다 가볍고 감각적이면서 오락적인 좀비 월드를 구현해냈다.

 

 
 

 

좀비들이 한국 넷플릭스 한 편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사이 다른 한 켠에서는 괴물, 귀신 같은 ‘크리쳐’들이 차근차근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웹툰 원작의 <스위트홈>에는 괴물들이 등장한다. 감염으로 늘어나는 이 괴물들은 인간의 욕망을 담아서 큰 눈, 긴 목 등 하나의 신체기관이 극단적으로 강조된 형태를 갖추었다. 그러니까 욕망이 괴이하게 뒤틀려 괴물이 된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는 특징이 있다. 지난 11월 공개된 <경이로운 소문>에는 악귀가 등장하는데, 이들은 인간 숙주에게 씌어 살인을 저지른다. 일명 '카운터'들이 팀을 이루어 협력하며 악귀들을 물리치게 된다.

 

한편 지난 9월 공개된 <보건교사 안은영>에는 다소 이질적인 크리쳐가 등장한다. 일명 '젤리'라고 불리는 이것들은 직접 물리적인 위해를 가하는 좀비·괴물과 달리, 인간의 성격을 바꾸거나 아프게 하는 등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인간의 욕망에서 발현되며, 대체로 귀여운 외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무언가에 감염되고, 씌이고, 변형·부패되어 생겨나는 이런 ‘비인간’들은 인간과 대결한다. 우리의 주인공이 이들과 대결하며 인간을 구하고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콘텐츠의 주된 내용이 된다. 

 

특히 지금 같은 코로나19 시대에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작품들은 비교적 비옥한 제작 환경을 보장받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비옥한 콘텐츠 제작 환경에서 급부상하는 것이 어째서 하필 ‘비인간들과의 대결’인지에 대한 이유는 하나로 단정지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유력한 추측 몇 가지를 해 볼 수 는 있을 것 같다.

 

생각하자면 주인공과 대립하는 ‘안타고니스트’의 역사는 유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째서 비인간과 대결하는가’를 묻기보다 ‘지금 한국의 주인공들이 대립하는 상대는 어째서 하필 비인간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간 한국 영화계는 대결할 상대를 찾기 위해 <명량>(2014)이나 <암살>(2015)처럼 오랜 역사적 숙적을 불러내기도 했고, <택시운전사>(2017)나 <변호인>(2013)처럼 역사 속에 흘러간 국가를 다시 소환하기도 했다. 또 <터널>(2016)처럼 사회 시스템을 조준하거나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처럼 악인들 사이의 난장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간의 한국 관객들은 역사, 이념, 윤리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대결할 상대를 찾아왔다. 그리고 이것들은 공교롭게도 비인간에게는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안타고니스트로서 비인간의 인기는 ‘있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한국의 관객들은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대결에 지친 것이 아닐까. 가슴 아픈 역사도, 머리 아픈 이념도 없이 오로지 대결상대로서 지금 이 자리에 현현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비인간의 잦은 출몰을 목격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역사도 이념도 없는 비인간들이 가지는 독특한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스토리’다. 물론 전부라고 할 수 없지만 한국 콘텐츠에서 유독 자주 엿보이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민초들의 수난을 전제한 <킹덤2>의 좀비, 비극적인 감염으로 생겨나는 <부산행>의 좀비, 학생들의 욕망을 담은 <보건교사 안은영>의 젤리처럼 무언가 사연이 있는 비인간들이 많다. 이런 점은 근래 나타난 특징이라기보다 차라리 한국의 콘텐츠가 지녀온 오랜 전통이라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처녀귀신에 대한 설화들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에서 초자연적인 존재들은 물리쳐야 되는 대신 ‘사연을 듣고 달래어 한을 풀어줘야’ 하는 존재로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이 지닌 의외의 스토리를 통해 우리는 도리어 아주 인간적인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최근 넷플릭스 작품들의 경향은 그 독특한 유산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새 지금 시대의 콘텐츠에도 흐르고 있음을 알게 한다. 

 

새삼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로 지금 우리는 분명한 OTT의 전성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 비옥한 토지 위에서 풍성히 자라하는 것이 ‘비인간과의 대결’이라는 점은 쉬이 지나칠 수 없는 현상이다. 그것은 지금 한국 관객들이 날 선 역사와 이념 대신 고유한 스토리를 갖춘 생생한 대결상대를 기다려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들이 얼마나 오래 넷플릭스를 장악할지, 혹은 다른 상대로 변화할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지금 우리의 앞에 있다는 점이다. 기묘하게 변해버린 인간의 형상. 그들과의 한 판 승부. 지금 대한민국은 비인간과의 대결에 매료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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